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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4 김용구 이름으로 검색 댓글 0건 조회 2,215회 작성일 2005-07-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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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19 (목) 16:49 뉴스메이커

[커버스토리]긴급조치 9호 세대 30년 만에 ‘세상 밖으로’

‘잊혀진 세대’로 지내오다 침묵 깨고 모습 드러내 현재 우리 사회 여러 방면 포진 중추세력으로 성장 네트워크 형성 본격 활동 땐 현 정국 큰 변수 예상



이름 없는 세대, 얼굴 없는 영웅, 소리 없는 투사들이 30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한 세대가 지나도록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를 숨긴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거대한 세력이 ‘커밍아웃’했다.
지난 5월 13일 오후 3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는 일견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중장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긴급조치 9호 세대, 줄여서 긴조9호 세대, 더 줄여서 ‘긴조세대’라는 이름표를 달고 30년 지각해 이 시대의 급행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이다.
40대 중·후반~50대 초반으로 성장
긴조세대란 30년 전인 1975년 5월 13일 발동돼 1979년 12월 9일 해제된 긴급조치 9호 하에서 민주화투쟁을 벌인 세력이다. 좁게는 이 시기에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벌였던 73~79학번 세대를 ‘민청학련 세대’나 ‘전대협 세대’ 등과 구별하는 말이다.
이들은 다른 세대와 달리 폭압적 상황에서 비공개 지하활동에 치중한 데다 당시의 극심한 언론통제로 인해 그 활동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하나의 세대로 일반화되지 못한 채 30년을 지내왔다. 또 연대활동도 불가능했던 만큼 다른 세대처럼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지도 못했다.
이들의 활동은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된 뒤에도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 신군부의 집권, 6월항쟁 등 정세의 급변으로 인해 제대로 조명받을 기회를 잃었다. 그래서 ‘잊혀진 세대’ ‘잃어버린 세대’ ‘475세대’ 등의 모호한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 40대 중·후반에서 50대 초반인 이들은 우리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해 각계에 포진해 있다. 그러나 단일한 세대로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존재가 역사와 현실 속에 묻혀 있었다. 민청학련 세대의 정치적 부활도, 386세대의 화려한 등장도 이들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긴급조치 9호 발동 30주년이 되는 날 이들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긴급조치 9호 철폐투쟁 3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학술토론회를 통해 이들은 유신체제와 긴급조치 9호의 실상을 새로이 규명하고 당시 학생운동의 역사적 위상과 의의를 찾았다.
학술토론회에 이어 프레스센터 20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이들은 긴조세대의 역사 복원 작업 전개, 유신독재 미화 및 박정희 부활 저지, 한국 사회의 실질적 민주화와 민족통일에의 기여 등을 천명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 기념행사에 맞춰 ‘30년 만에 다시 부르는 노래’(자인)라는 문집을 발간, 30년 동안 감춰온 자신들의 활동과 속내를 공개했다.
선배세대에 밀리고 후배세대에 추월당할 때도 침묵했던 긴조세대가 ‘세상 밖으로’ 나올 경우 현 정국과 사회 전반에 적잖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긴조세대의 독특한 성격과 동질성, 두터운 저변으로 보아 그 영향력이 간단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학술세미나에서 두 번째 발제에 나선 정태헌 고려대 교수(한국사)에 따르면 긴급조치 위반자는 1370명, 구속자는 1050명에 이른다. 긴급조치 9호 시기 학생운동 관련 구속자는 본지가 확인한 숫자만도 580여 명이다.
드러나지 않은 구속자와 구속되지 않았더라도 수배·연행·감시·강제징집이나 제명·정학 등을 당한 학생운동 관련자는 적어도 그 1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서클 활동이나 학습, 야학, 시위 참여 등을 통해 세대적 동질감을 형성한 사람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현재 긴조세대로 불리는 인사는 그나마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들은 현재 각계에서 중추그룹을 이루고 있다. 정치권만 하더라도 큰 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는 386세대를 능가하는 저변을 형성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우원식·노영민·노웅래·민병두·유기홍·유승희 의원 등 13명이 참여하고 있는 ‘아침이슬’이 긴조세대의 모임이다. 같은 당 채수찬·김부겸·안영근·홍미영·유시민,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 민주노동당 주대환 정책위의장, 심상정 의원, 이선근 민생보호단장 등도 대표적인 긴조세대다. 국정홍보처 김창호 처장과 이백만 차장, 조성두 한국조폐공사 감사, 양민호 대한광업진흥공사 감사 등 관계와 그 주변에도 긴조세대가 두루 포진하고 있다.
선배세대지만 열린우리당 장영달 상임중앙위원과 원혜영 정책위의장, 이호웅·배기선,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 등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 시기 학생운동에 연루돼 장기 수배된 바 있어 넓은 의미에서 긴조세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결의문 채택 이어 활동 속내 공개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서주원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유종성 전 경실련 사무총장, 박석운 전국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유영표·선경식 민주화운동공제회 상임이사, 고은광순 참여정치연구회 상임이사 등 시민·사회운동 부문에서 일가를 이룬 긴조세대는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긴조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운동권 외에도 개별적으로 각 방면에 고르게 약진해 일가를 이룬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IT업계에서는 팍스넷 돌풍을 일으킨 박창기 프락시스 대표이사, ‘싸이월드’로 뜬 유현오 SK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 등이 대표적이고 문화·예술계에도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이사, 김준묵 한국문화진흥 대표이사, 장선우·여균동 영화감독 등이 돋보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변재용 한솔교육, 임국진 창의와탐구 대표이사 등은 기업을 일으켜 성공한 긴조세대다.
학계·언론계는 긴조세대가 가장 많이 포진한 분야이기도 하다. 학계에는 조희연(성공회대)·김석준(부산대)·홍윤기(동국대)·심상완(창원대)·이필렬(한국방송대)·최영기(한국노동연구원장) 교수 등이 있고, 언론 분야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류석기 머니투데이 공동대표, 서명숙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등 주요 인터넷 매체를 모두 긴조세대가 이끌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그동안 스스로 ‘긴조세대’라는 명찰을 달고 자기 세대를 포장하지 않았고, 그래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회 각 방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본지가 ‘긴조9호 세대 대탐험’이라는 시리즈를 통해 1년 5개월 동안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이름과 얼굴과 목소리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한몫을 하고 있지만 동질성이 강하고 시대의식이 높다. 현재의 보혁갈등과 세대갈등, 민족통일 문제,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따른 사회구조적 문제 등 시대적 난제에 대해 깊이 고뇌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런 고뇌들이 긴조9호 발동 30주년을 계기로 표출된 것이 이번 행사와 문집 발간, 네트워크 구축 모색 등과 관련된 최근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긴조세대는 우리 사회의 변화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세대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이들은 성장하면서 많은 사회문제를 유발했다. 초등학교 때는 2부제 수업 등을, 중·고교에 진학할 때마다 입시제도의 변화를 겪었다. 대입 때는 치열한 경쟁을 불렀고, 졸업하면서는 이전에 없던 취업난이라는 걸 처음으로 경험한 세대다.
조직의 상층부에 진입할 나이에는 ‘조퇴’ ‘명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사오정’이라는 유행어가 등장한 것도 이들이 그 나이에 진입할 즈음이었다. 이들이 은퇴할 나이에는 연금 문제가, 세상을 떠날 때는 묘지난이 말이 아닌 현실로 대두할지도 모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스스로의 문제를 안고 가야 하는 세대인 셈이다. ‘마지막 컴맹세대’ ‘마지막 가부장세대’라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시대 변화의 경계에서 아래위로 치이는 불운까지 함께 떠안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IT업계까지 고르게 약진
그러니만큼 어느 연령대보다 치열하게 문제에 접근하고, 열심히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세상을 향해 일정한 몫을 하고자 할 때 긴조9호라는 거대한 바위를 계란으로 무너뜨린 것처럼 사회 변화에 큰 동력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날 학술토론회에서 정태헌 교수는 “긴조9호 세대가 일구어놓은 ‘서울의 봄’과 ‘광주’는 원망과 희망으로 남아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불러온 386세대가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며 “긴조9호 세대는 그 무성한 밀밭을 가꾸기 위해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도 귀중한 밀알의 역사적 소임을 다한 것이다”라고 이 세대의 ‘과거’를 규정했다.
이보다 앞서 발제한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는 긴조세대의 현재 각오와 미래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긴조9호 세대는 박정희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다 겪은 세대다. 바로 이 점이 박정희 망령에 이끌리면서 방황하는 현재의 세대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리의 역량을 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욱 철저하게 성공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갑자기 죽음으로써 끝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그와의 투쟁을 더 높은 차원에서 완결지을 때가 오고 있다. 감옥과 수배생활에서 보낸 그 세월은 누구에게도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는 걸 입증하자.”
<신동호 편집위원 hudy@kyunghyang.com>
*조성두 한국조페공사 감사  52회,*임국진 창의와탐구 대표 5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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