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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光錫 (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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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홈운영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2,572회 작성일 2002-07-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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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7월12일 시인 겸 문학평론가 채광석이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작고했다. 39세였다. 채광석은 1980년대 민중문학론의 대표적 이론가 겸 실천가였다. 그의 동료들 다수와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감옥과 고문 체험이 있었다. 채광석은 1975년 유신철폐를 외치며 할복한 서울농대생 김상진의 추모 시위(세칭 5ㆍ22사건)를 주도했다가 구속돼 옥살이를 했고, 1980년에는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돼 40여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 옥살이와 고문체험은 그의 몇몇 시편들에 녹아들었다.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대전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를 다닌 채광석은 길지 않은 문학적 삶을 당대 문단의 불평분자이자 우상파괴자로 일관했다. 그는 1980년대의 유사 파시즘 정권에 뻣뻣하게 맞서며 진보 문학의 선동가를 자임하고 나섰지만, 1970년대 이래의 진보 문학 진영에 대해서도 불평을 늘어놓으며 그것을 파괴해야 할 우상으로 여겼다. 그의 뒷세대 비평가들이 시세에 따라 전유하거나 반납했던 민중적 민족문학론의 깃발을 처음 치켜든 것이 채광석이었다. 그는 노동자를 핵심으로 한 기층민중을 문학의 중심 주체로 삼아, 자신이 소시민적 민족문학이라고 부른 기존의 민족문학을 새롭게 재편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재편이 이뤄진 뒤의 민족문학을 민중적 민족문학이라고 명명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분단 이래 한 세대 이상 남한의 반공정권 아래 가사(假死) 상태에 놓여있던 일제시기와 해방기의 진보 문학 전통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원해내고 있었다. 채광석의 민중적 민족문학론은 1970년대의 민족문학론을 주도한 ‘창작과 비평’의 4ㆍ19 세대 비평가들과 그를 또렷이 구별하면서, 그가 죽은 뒤 한동안 한국 문단의 한 모퉁이를 뜨겁게 달굴 민족문학(주체)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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