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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희 同門의 -어떤 證言 및 어떤 將軍들의 回顧는 多多益善]

작성일 17-04-14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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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8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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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전두환 회고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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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라이팅에디터

고정애라이팅에디터



정치인의 자서전을 읽는 건
‘가성비’가 높은 일은 아니다.

투입 가격·시간 대비 효율성 말이다.

그럼에도 계속 손에 쥐게 되는 건
이런 일화들을 만날 수도 있어서다.
 
1997년 대선에서의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를 두고

당시 자민련 사무총장이었던



강창희 前 국회의장이 한 증언이다.
 

“지원유세 비용으로 (DJ의) 국민회의로부터 받은 건
80억원이었다.
놀랍게도 그 돈은 모두 현금이었다.
그만한 현금을 받으려면
차떼기 외엔 방법이 없었다.

특이한 건 국민회의 측이 준 돈이
모두 1만원권 지폐였는데
전부 헌 돈이었다는 점이다.

띠지가 아닌 고무줄로 묶여 있었다.

당 계좌로 입금하기 위해
은행으로 가져가 기계로 세어보니
액수가 달랐다.
100장짜리라고 묶인 돈이
거의 다 한두 장씩 모자랐다.
누군가 고무줄로 묶으면서
슬쩍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그 와중에도
실소가 나왔다.”

(『열정 시대』)
 

검찰 수사관들이
헌 돈 1만원권 70만 장(70억원)을
직접 쌓아본 일이 있다.

가로 1m, 세로 2m30㎝에 높이 40㎝였다고 한다.

 ‘돈방석’을 넘어선 ‘돈침대’였다.
 
2007년 대선 국면을 다룬

정두언 전 의원의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시간』엔

국세청 고위 간부의 놀라운 생존술이 묘사돼 있다.

재산·세무조사 건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과 형 이상득 전 의원을
주무르며
정적들을 하나둘 제거했다고 한다.

기가 찬 얘기들이다.
 
64년 한·일 ‘굴욕 외교’ 반대 데모로


서울 전역이 들끓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민기식 계엄사령관과 나눈 대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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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 장군, 큰일 났소.


군부에서


김종필을 총살해야


시국이 해결된다고 하더라.”
 

“아니 군부라면
누구를 말하냐.
군은 내가 총책임자 아니냐.”
 




“김종오·김계원·김재규다.”




(신경식,

『7부 능선엔 적이 없다』)
 
김종오 장군은
그로부터 2년 후 숨졌다.
나머지 둘은 각각
박 대통령 암살 현장의
청와대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이었다.
기이한 인연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논란이다.
몇 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저작을 두고도 유사했다.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든 않든
다양한 시각의 사료가 풍부해지는 건
좋은 일이다.

국가를 책임졌던 이들로선
기록을 남기는 게 의무일 수 있다.
모든 훌륭한 역사는 낯섦에서

시작한다.


과거는  편치 않아야 하기 때문”

(歷史家 리처드 화이트)이다.



내밀한 권력 풍경 얘기,


때론 불쾌하고 언짢게 여겨질지라도


多多益善이다.
 
고정애 라이팅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전두환 회고록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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