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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장 참조-김경문-高校시절-머리 맞은 사건 늘 들먹이는 데-對策은?]

작성일 17-04-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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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조회 3,04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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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고교 포수 출신- 김경문 현재 NC다이노스 감독은?


고교시절--우리 대전고교 야구팀 과의 대결에서

포수 하다가-대전고교생 야구 방망이 맞아--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을 늘


언론에 공개해서 그것도 잊을 만하면

언론에 자주 공개하여--저 한준구도 이미 4번 정도 접한 적 있음


대고 출신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아마도 42년간 정식 사죄를 안한 듯 합니다.


배구 국가대표 박철우 선수를 당시 코치

이상열 코치가 심하게 두들겨 팬 적이 있습니다.


내가 배구협회 홈피 자유게시판에다

이상열은 사과 하라고 공개 글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


나도 중학시절-같은 반 학생 기습으로 두들겨 팬 것을

30년만에 사과한 적이 있는 데


우리 총동창회 차원엣

100주년 기념 행사 준비로 바쁘지만


그 가해 동창을 찾아서

저 한준구 처럼

수십년 지났자만

정식으로 사죄를 하는 것을 모색함이 옳을 듯 합니다.


사무국장님은 필히 이 점도 100주년 맞아 꼭 실현 시켜주시길 당부합니다.



************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김경문 감독 등번호가 ‘74’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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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몇 해 전부터 야구 시즌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건 숫자 ‘74’와 ‘포수의 헬멧’이다.
둘 다 NC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으로부터 비롯된 기억이다.
 
그를 만난 건 2012년 6월이었다.
당시 인터뷰 상황이 묘했다.
인터뷰의 주제가 특이하게도 책이었다.
게다가 그가 등장할 지면은 스포츠면이 아니라 문화면이었다.
 
야구감독이 책을 주제로 문화면에 등장하게 된 사연은 이랬다.
당시 ‘명사의 인문학 서재’라는 시리즈가 있었다.
명사들과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소개받는 시리즈였다.
마침 김 감독이 독서광이라는 얘기를 전해 들은 취재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한 게다.
 
그런데 김 감독은 인터뷰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당신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도 많거니와 책을 선정해서 소개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게다가 당시 NC다이노스는 신생팀이었다.
1군 리그 진입을 앞두고 하위 리그에 소속된 팀이었다.
김 감독은 팀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주제로 한 인터뷰, 누구라도 부담스러웠을 터다.
 
구단과 지인에게 청을 넣어서야 어렵사리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그를 만나러 마산으로 내려갔다.
가면서부터 고민이었다.
시리즈의 제목이 ‘명사의 인문학 서재’인데 하필 만날 장소가 야구장이었다.
야구장에서 책을 들고 사진 찍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별다른 대안도 없으니 이래저래 난감한 여건이었다.
 
야구장 더그아웃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6월 말 오후 1시의 더그아웃, 꽤 후텁지근했다.
장마가 막 시작될 즈음이라 습도마저 높았다.
그렇다고 인터뷰 장소를 옮길 형편이 아니었다.
선수들의 연습시간 전에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마쳐야 했기에 빠듯했다.
서로 그 사정을 아는 터라 에두르지 않고 바로 본론부터 묻고 답했다.
 
“책을 드는 이유가 뭔가요?”
"프로세계 30년이지만 승부의 고통은 가슴으로 멍들더라고요.
그리고 패배에는 면역력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많이 읽는 편입니다.”
 
가슴으로 체득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표현들이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경기의 스트레스가 코치, 선수로 옮겨가니 표를 내지 않고 참는 법을 책에서 배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의 등번호가 ‘74’인 이유를 말했다.
“행운의 숫자 7과 죽을 사(死)와 같은 발음의 4를 합친 것입니다.
행운과 불운은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 말에 적잖이 놀랐다.
승부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불운과 관계된 것을 일부러 피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등번호에 품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이야기를 했다.

DA 300


"고등학교 때였어요. 당시 지역 라이벌 공주고와 대전고의 시합 중이었어요.
포수를 하던 제가 대전고 선수가 휘두른 야구방망이에 맞았어요.
기절해서 실려 갔습니다.
일주일 정도 의식불명이었고 한 달 가량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당시엔 헬멧을 안 쓰고 시합을 할 때였죠.
사실 이 사건 때문에 포수가 의무적으로 헬멧을 사용해야 하는 규정이 생겼습니다."
 
등번호 ‘74’의 의미가 더 확연히 다가왔다.
승부의 세계, 누구나 행운과 불운을 겪는다.
행운이 불운이 될 수도 있고,
불운이 행운이 될 수도 있다는 삶의 철학을 등번호로 품은 게다.
 
새로운 시즌의 시작이다.
김감독의 등번호부터 살폈다.
어김없이 ‘74’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김경문 감독 등번호가 ‘74’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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