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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왜-앙숙이었나-500년간 교류했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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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53 한준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 댓글 0건 조회 3,555회 작성일 2012-12-19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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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18 20:07수정 : 2012.12.18 21:14
고대 한반도계 유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일본 나라현 후지노키 고분의 석실 내부. 최근 이 고분의 말갖춤 장신구 등 관련 유물들이 신라에서 제작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중 학자들과 국제 학술대회
“고분 출토 유물 보면 교류 활발”
백제·신라인들 중국 다닌 항로
황해 아닌 산둥반도설 주장도

고대 신라는 일본의 왜 왕국과 외교를 할 때 어떤 물품들을 주고받았고, 어떤 의례를 펼쳤을까. 고대 백제나 신라 사신들은 어떤 얼개의 배를 타고 어느쪽 바닷길로 중국이나 일본에 갔을까.


최근 국내 고고학계에서는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고대 대외 교류사의 세부를 복원하려는 연구가 조금씩 물꼬를 트고 있다. 대선으로 술렁거렸던 지난 1~2주 사이 학계에서는 고고 유물과 문헌 기록을 토대로 백제, 신라의 대외 관계를 조명하는 학술 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 신라와 왜는 정말 앙숙이었을까? 

지난 15~16일 대구 경북대 박물관이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과 공동주최한 ‘신라와 왜의 교류’ 국제학술대회는 

적대국 인식만 팽배했던 신라-왜의 외교교류사를 한·일 연구자들이 처음 집중 조명하는 자리였다. 


총론격인 ‘신라와 일본’을 발제한 

박천수 경북대 교수는?

“200여년에 불과했던 백제와 가야의 교류기간에 비해 

신라는 500여년간 왜와 교류했다”고 강조했다


“통일전쟁만으로 두 나라가 갈등 관계였다고 보는 건 

객관적 해석이 아니다”라는 단언이었다. 


5세기 전반 일본 열도 고분에서 발견되는 금동제 장신구와 마구 등이 신라산인 반면, 


황남대총 같은 신라 왕릉급 무덤에 부장된 경옥으로 만든 곡옥은 재료가 일본산이란 점에서 

교역관계가 일찍부터 형성됐다는 주장이다. 


또 6세기 후반 일본의 대표적 귀족 무덤인 나라현 후지노키 고분의 마구, 

장신구 부장품들도 상당수 신라산이며, 

7세기에는 신라 인화문 토기가 일본의 옛 도읍 난파, 나라 등에서 

집중 출토된다는 점 등도 또다른 근거로 제시됐다.



일본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다카다·니토 연구원은?

신라와 고대 일본의 무덤에서 나온 장신구와 마구에 있는 용, 풀잎 등 문양의 유사성, 

<일본서기>의 교류 기록 등을 분석하면서, 

양국 외교가 물품과 기술자의 증여·파견, 지역 실력자들의 사신 교류 등 다양한 경로로 이뤄졌음을 짚어냈다. 

좌장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임나일본부 등 기존 군사정복설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고대 일본과 신라의 중앙·지역 세력들 사이에서 각기 진행됐던 

고대 교류사의 복합성을 부각시킨 게 성과”라고 평했다.



■ 우리가 몰랐던 백제인들의 흔적은? 


지난 7일 대전 충남대 박물관에서 이 대학 백제연구소가 

‘백제의 사행로’를 주제로 마련한 한·중 학술회의는 

중국에서 최근 드러난 고대 한반도인들의 옛 무덤, 외교 공관 등에 대한 새로운 사료 소개와 논의로 채워졌다.


논란이 뜨거웠던 건 백제·신라인들이 중국에 갔던 바닷길의 실체였다. 쑨광치 중국 다렌해사대학 교수는 


2~3세기 동한시대에 이미 한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산동반도로 건너가는 항로가 개발됐다고 주장했으나, 


정진술 전 해군사관학교 교수는 ‘타당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고대인에게 황해는 위험한 대양이었다”고 그는 전제한 뒤, 

“위치를 파악하는 항법술이 발전하지 못한 단계에서 

10세기까지는 랴오둥 반도까지 올라가 

산둥반도로 건너간 뒤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는 북방연해 항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발굴성과가 알려진 황해변 장쑤성 렌윈강의 한반도계 석실무덤은?

무덤 주인이 백제인인지, 신라인인지와 이들이 어떤 경로로 정착했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박 교수는 판석이 있는 석실 무덤은 백제계임이 뚜렷하며, 

백제 멸망 뒤 끌려가던 백제인들 일부가 정착 뒤 남긴 유적이라고 보았으나, 


김낙중 전북대 교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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